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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넷플릭스 드라마, 잔니 베르사체의 죽음: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2

by K교수 2020. 5. 16.

 

 

 

 

 

 

 

 

우연히 넷플릭스의 수많은 작품을 검색하던 중 명품 베르사체가 눈에 확 띄었다.

베르사체 로고인 슬픈 메두사의 조각이 왠지 모를 비극을 말해줄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이건 베르사체에 대한 이야기인가? 다큐드라마인가 하고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건 다큐도 아니고 베르사체 브랜드엔 대한 이야기는 더욱더 아니고

실화를 바탕으로 둔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미니시리즈 드라마였다.

 

명품 브랜드라는 것 말고는 평소 베르사체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던 나로서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베르사체라는 브랜드를 만든 사람의 성이 베르사체이고 그 창업자이자 디자이너인 잔니 베르사체가 동성애자이며

어떤 젊은 동성애자에게 자기 집 앞에서 총격 살인을 당했다는 것이다.

제목에 베르사체의 죽음이 들어가 있지만 사실 주인공은 베르사체가 아닌 베르사체를 죽인 앤드류 쿠내넌 그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 앤드류는 젊고 명석하며 게이로서 인간으로서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지만 잔니 베르사체뿐만 아니라

무려 5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라는 것이며 이 모든 게 1997년에 일어난 실화라는 게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1997년에 일어난 이 비극적인 사건은 살인범, 희생자 모두 동성애자라는 특징이 있었다.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이야기와 성소수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잔니 베르사체 매우 유명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머지 희생자도 나름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는 인사들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실명이 직접 쓰였고 사실에 최대한 입각하여 만든 것이 이 미니시리즈 드라마의 특징이다.

매우 자극적인 소재를 담고 있는 이 드라마는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주고 있으며 최대한 당시 상황과 분위기를 잘 재현하고 있다.

사실 폭력적인 장면과 동성애적 장면이 여과 없이 보여지지만 주연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력과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으로 상당히 몰입을 하면서 볼 수 있는 명품 드라마이다.

평론가의 평가도 좋았고 2019년 골든글러브 작품상 및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최근 들어 꾸준히 성소수자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이미 우리나라 작품에도 동성애자를 다룬 것들이 제법 있다.

서울시 한복판에서 퀴어축제까지 하는 우리나라도 더 이상 동성애자 이야기는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다.

며칠 전 이태원 클럽에서 시작된 코로나 감염사태도 그 클럽이 게이클럽이었고 커밍아웃한 연예인들이 방송 출연도 하고 있다. 이미 이들은 단순 소수자 마이너라고 치부하기엔 영향이 꽤 있는 그룹이 되었으며 동성애자 모두가 커밍아웃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사회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슬픈 드라마를 보면 이성애자 입장에서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성소수자도 같은 인간일 뿐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의 현실 역시 이성애자들의 세상과 다를 게 없다. 돈 많은 게이가 젊고 잘생긴 게이를 찾고 스폰 해주고 남들 앞에서 잘난 척, 있는 척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것. 그들 역시 허영과 욕망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사랑과 보살핌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하기 위해 산다. 현재 행복하지 않더라도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한다.

행복이란 사실 포괄적인 쾌락의 개념이 아닌가 한다.

인생이란 결국 쾌락을 얻기 위해 산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쾌락이란 우리에게 있어서 아주 소중하면서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기본적인 욕구와 쾌락을 탐닉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쾌락이란 즐거움과 황홀감을 주면서 반대로 위험한 면을 담고 있다. 과거 생쥐를 가지고 쾌락중추를 자극하게 만든 실험에서도 생쥐가 먹이도 먹지 않고 죽는 그 순간까지 쾌락을 좇았다는 유명한 실험은 쾌락의 무서운 중독성과 위험성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쾌락에는 역치라는 것이 있다. 한 가지 쾌락에 익숙해질 무렵 우리가 동일한 쾌락을 느끼려면 그전보다 훨씬 강한 쾌락이 주어져야 비슷한 쾌락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순간적이고 얻기 쉬운 쾌락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진다.

그 쾌락은 일순간이고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지속적이고 더 강한 쾌락을 좇는다.

 

인간은 무언가 실체는 없지만 영원하면서도 단순한 쾌락보다는 더 가치 있는 무언가를 찾는다. 쾌락만큼 순간적으로 강렬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사랑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보살핌을 받길 원한다... 조건 없는 사랑, 엄마가 갓난아이에게 베푸는 그런 사랑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그런 조건 없는 사랑은 어른이 되면 현실에서는 없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그런 받기만 하는 이기적인 사랑을 꿈꾼다.

현실에서의 사랑은 사실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어느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고 상대를 배려한 그런 사랑이다.

easy come easy go, 너무 쉽게 얻어지는 것은 무너지게 되어있다.

앤드류 역시 그가 가진 젊은 매력을 십분 발휘하여 나이 많은 부자 게이의 애인으로서 큰 저택에서 살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본인은 자기의 매력과 젊음으로 그것을 얻은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것을 자기 것이라 착각을 하고 나이 많은 애인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 결국 본인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그는 예전처럼 빈털터리가 된다. 그동안 자신의 젊음과 매력을 통해 쉽게 얻은 화려한 것에 취해있고 그 큰 쾌락을 맛본 나머지 이미 커져버린 쾌락의 역치는 그를 파멸로 몰고 간다.

 

우리가 흔히 금수저, 흙수저 하면서 본인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자기보다 나은 환경에 있는 사람을 무한히 부러워하고 질투를 한다.

그런데 사실 인생 전체를 보면 세상은 은근히 공평하다. 앤드류 역시 처음은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사업적 문제로 국외로 도망가고 나서부터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가 만약 사립학교도 다닐 수 없고 부자가 아닌 단순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그리 매력적인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고 명석한 두뇌가 아닌 그저 그런 평범남으로 태어났다면 그는 연쇄살인범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오류 중의 하나가 자신의 눈높이와 자기만의 세계관으로 남들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그가 가진 것이 대단해 보일지라도 실상은 그 반대일 수도 있고 자신의 구렁텅이 같은 현실이 남들에겐 부러운 환경일 수도 있다.

 

결국 그의 삐뚤어진 욕망과 가치관은 여러 사람을 해치고 그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만든다. 그가 동경했던 베르사체마저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앤드루에게는 가질 수 없다면 망가뜨리고 싶은 존재였을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진리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좋은 음식도 과식하면 탈이 난다. 조금은 비우고 살자. 끊임없는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해소한다고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한정된 그릇이 자꾸 차오르면 비워야 한다. 인생에 있어서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다. 작은 것에 감사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한 번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한 번쯤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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